2016년 5월 10일 화요일

아버지와 모터사이클 - 기아혼다이야기


모터사이클 라이프를 돌이켜보며 
왜 이렇게 까지 애호가(?)가 
되었을까? 라고 생각해보니 
나름의 조기교육이 있었습니다. ㅋㅋ

오늘은 아버지와 모터사이클.
그리고 기아혼다의 이야기입니다. 






* 70년대 초반 신문광고(CB-250)

우리나라의 경우
혼다의 수입은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아가 혼다의 바이크를
수입하여 조립 생산하는
방식으로 시작됩니다. 






* 76년 지면 광고

아버지께서 대학 졸업 후에
베트남전을 참전하고,

미군 등과의 교류에서
모터사이클 (할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귀국 후에 당시 일본에서
사업을 하시는 친척 분들의
도움으로 모터사이클에
입문하시는데요.

수입하고 타셨던 바이크들은
정비가 쉽지가 않았었고
이후 기아혼다의 바이크를 타십니다.

지금도 흔치 않은 125cc이상의
혼다 CB250. 당시 70만원대의 가격.

직장인 월급이 10만원정도 하던
시절이기에 현재로 환산하면,
BMW 최고사양의 바이크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었던듯 합니다.

지방이었고,
정비소도 흔치 않았기에
모터사이클 메인터넌스는 항상
문제였습니다.

이후 제가 태어난 뒤에
아버지와 함께 정비하거나
지켜보게 됩니다.

지금도 가끔 양만장이나
이륜관 테라스에 앉아서 보다보면
뒷자석에 자녀분을 탠덤한
라이더를 볼 수 있는데요.

유치원도 가기 전.
30년정도 전의 제 모습과도
오버랩이 됩니다.

꼬꼬마 시절부터 아버지의 등을 꼭
붙들고 마실을 다녔고, 정차 후 출발시에
굴러 떨어져본적도 있네요. ㅋㅋ


그리고 위의 기아 혼다는 80년대 초반
자동차 산업 정리의 과정에서
대림과 합병이 됩니다.

미쯔비시의 자동차를 수입 조립하던
현대가 이제 글로벌 회사가 되었습니다.
기아혼다가 남아서 사업을 유지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위의 사진은 93년도 대림에서

나온 VF125의 매뉴얼입니다.

당시 아버지도 이녀석 박스를 깠는데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타시다가 슬립을 하고 돌아오신
날에는 뜨거운 물수건으로
상처를 닦고 약을 발라 드렸던
기억도 납니다.

제게는 탠덤이 그닥 좋은 추억은
아니였습니다. 무섭고 위험하단
생각에 모터사이클은 멀리하게
되었고 20대에는 차에 빠지죠.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탠덤하던
꼬마가 자라서 이제 중년이 되어가고 라이더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늘 원하던 할리.
로망의 두카티를 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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